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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가해자는 승승장구, 피해자는 평생 트라우마”…‘공정’ 뇌관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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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동주 작성일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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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피해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대중은 왜 학폭에 특히 분노하는가’ 질문에 대한 전문가 3인의 분석

《더 글로리》 같은 드라마가 현실에서 드러나자 ‘감정이입’도



서울대학교 정문 앞 조형물인 '샤' 앞에 축하 꽃다발을 든 학생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 학생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 그 뒤로 박수를 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가장 뒤에서 박수 치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은 "멋지다 순신아"라고 소리친다. 학교폭력(학폭)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에서 따온 대사의 패러디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아들의 학폭 문제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사태가 대중의 눈에 어떻게 비춰지는지 묘사한 이 그림은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의 만평이다. 3월6일 발행한 2064호에 실린 이 만평의 제목은 '더 글로리샤'.


정순신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음에도 국민의 공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은 대자보를 붙여 정 전 후보자 아들의 자퇴를 촉구하는가 하면, 조국 사태와 비교해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학폭 미투'도 잇따르고 있다. 


학폭 가해자가 버젓이 명문대에 입학한 데 따른 '불공정'에 대한 분노일까, 아니면 고위 공직자 자녀의 학폭 문제를 걸러내지 못한 정부 인사 검증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일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도 피해자의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감정이입 때문일까. 대중의 분노는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분노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본질을 짚어봤다. 



이수정 “학폭 무력화시켜온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대중이 이번 사태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학창 시절을 경험한 이들에게 축적된 학폭 경험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단순히 이 사건 하나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학폭을 겪거나 목격한 자로서의 경험에 기반한 전반적인 문제 제기로 보인다"고 했다. 학폭에 사회가 적절히 개입해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근저에 깔려 있던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대중이 《더 글로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복수극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반격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대신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이라며 "복수를 통한 갈등 해소를 보면서 사람들은 현실에서 얻지 못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학교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교육 환경,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적절하지 못한 대응 조치가 현재의 심각한 사태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우리 사회 학폭은 주입된 경쟁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아이들 세상에서 힘은 일종의 지위다. 노르웨이에서는 학폭의 본질이 집단 내에서의 상하관계에 있다고 보고, 무리 지어 상하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교사와 학교가 개입해 교내 따돌림 문화를 없앤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경쟁이라는 가치의 용인 아래 아이들에게 생존경쟁을 조장하고, 약자가 도태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건 해결을 위한 적절한 개입과 조치를 하지 못하고선 모든 책임을 아이들에게 떠넘기는 것도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무엇이 합법이고 불법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소년사법의 철학"이라며 "현재의 학교폭력방지법은 아이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는 순간까지 몰아붙여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학교를 떠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가장 비교육적"이라고 비판했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학업 중단자가 늘어나고 은툰형 외톨이 문제가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건 초기에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계도와 동시에 추가 피해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사건 초기 제3의 기관이 나서 피해자가 피해를 당했다고 분명하게 선언하는 순간, 조직 전체가 다 피해자 편에 서게 된다. 사건 당사자나 학교 관계자가 아닌 객관적 입장에 있는 제3의 기관의 개입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수사권 조정으로 재량권이 생긴 경찰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학폭 사건은 경계가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경찰은 어디까지가 법적으로 저촉되고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사건 직후 조사를 통해 피해 사실을 조직에 고지하고, 가해자에게 강력한 주의를 준다면 추가 피해를 막는 동시에 교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세환 “가장 민감한 대학입시와 '공정' 건드려”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이면서 경기도 화성오산교육지원청에서 학교폭력심의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세환 변호사는 '정순신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공정'의 뇌관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학폭도 범죄라는 인식 변화에 더해 사회 지도층 자녀의 입시 문제로까지 연결되면서 '공정' 이슈가 됐다"면서 "학폭 가해자가 문제 제기를 무력화하고, 명문대에 진학해 잘 먹고 잘사는 스토리는 드라마에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중이 그 일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중이 분노하는 3가지 이유로 그는 첫째 사회 고위층 자녀가 학교폭력의 가해자라는 점, 둘째 사회 고위층 인사가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분을 무력화하려 노력한 점, 셋째 가해자는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피해자는 대학에 입학하지도 못한 상황을 꼽았다. 


이 변호사는 정 전 후보자 아들 사건에 대해 "언어폭력 사건에서 '강제처분' 결과가 나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면서 "초기 대응을 잘못해 역효과가 난 사건"이라고 꼬집었다. 학폭이 발생하면 학폭위가 심의를 열어 가해자와 피해자, 목격자, 선생님 등의 진술을 듣고 사안을 파악해 최종 처분을 내린다. 그는 "학교폭력심의위원회 심의 당시 가해자가 반성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아 강제처분 결정이 나온 것 같다. 결국 재판까지 갔지만 1·2·3심 모두 패소했다"고 분석했다.


정 전 후보자 부부는 아들에게 강제전학 처분이 내려지자 '언어폭력은 맥락이 중요하다'는 논리로 방어하는가 하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진술서를 직접 손보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부모 입장에서 자녀의 강제전학은 매우 심각한 조치이기에 부모가 상고심까지 간 것 자체를 비난받을 행동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 탓으로 돌린 점 등이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학폭 사건은 피해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진심 어린 사과'라는 점에서 성인 사건과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학폭 사건에서 합의를 위한 돈 얘기 등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실제로 친구끼리 치고받고 싸웠지만, 학폭위를 통해 울면서 화해하고 다시 잘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이 엄연한 범죄라는 인식의 강화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는 제언이다. 이 변호사는 "10~20년 전 성범죄를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하다. 남녀 사이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시각 때문에 성범죄에 대한 수사 의지가 부족했고, 유죄 판단에도 인색했고, 처벌형량도 낮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해 피해학생이 신고를 꺼리고, 신고해도 피해를 인정받기 어렵고, 처분 또한 '솜방망이'에 그칠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면서 "재판에서 판사조차 '애들 싸움이 부모 싸움이 돼 여기까지 왔냐'는 시각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 시각에 아이들은 한 번 더 상처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학폭 피해자가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무조건 신고 조치를 해야 한다는 조언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는 "신고를 해도 해결이 안 될 것 같아 포기하려고 하면 가해학생이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더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면서 "가해자도 학생이어서 본인의 잘못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 조치가 미흡하더라도 신고 이력이 있어야 보복폭력 등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학교폭력 사건을 많이 접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으로 전담 인력의 전문성 부족을 꼽았다. 그는 "변호사로서, 학교폭력심의위원으로서 사건을 받아보면 증거조사 등이 전혀 안 돼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면서 "교내 담당 선생님도 법조인이 아니니 자문을 구해야 하는데, 상급 교육청 외에는 변호사도 없고 활용할 수 있는 자문 시스템도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서울시와 각 지방 도교육청에만 변호사 1~2명을 두고 있는데, 학교폭력심의위를 둔 모든 교육청에 전담 변호사를 두고 수시로 전문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열 “피해자 상당수가 2차 피해 두려움으로 학교 떠나”


김소열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의 공분이 "보호받아야 될 사람이 보호받지 못하고, 처벌받아야 될 사람이 처벌받지 못한 데 대한 분노"라고 짚었다.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처한 현실을 되짚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김 국장은 "사람들은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의 '학폭 미투' 사건들을 접하면서, 가해자들은 잘못을 다 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반면 피해자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봐왔다"면서 "정 전 후보자 아들 사건에서도 가해자는 명문대에 진학해 승승장구하고, 피해자는 학교를 그만두거나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상반된 결과를 보며 분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정 전 후보자는 단순히 유명인이 아니라, 원칙과 정의의 수호신이 돼야 할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김 국장은 "국가수사본부장이 엄연한 범죄인 학교폭력 문제를 숨기고 덮으려 했던 데 대한 대중의 반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는 2000년 사회적 공분을 샀던 성수여중 집단폭행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가족,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을 시작한 비영리단체다. 전국에 7개 센터를 운영하며 심리상담 등 학교폭력 피해 가족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해 김 국장은 "피해자 치유를 위한 정책이 거의 없다는 게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2004년 제정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의 첫번째 목적은 '피해학생 보호'지만, 정작 학교를 떠나는 건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 김 국장은 "피해자 상당수가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학을 가거나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본다"고 했다. 


정 전 후보자 아들의 경우도 강제전학 처분 이후 이에 불복하는 행정소송, 행정심판, 집행정지 신청 등 모든 법적 절차를 동원했고, 소송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 반년 이상 학교에 남을 수 있었다. 이 기간 피해자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한 달간 입원하는 등 4개월 이상 출석하지 못했다. 그나마 학교를 졸업하긴 했지만, 최소 2년간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가해자를 위한 특별교육시설은 전국 6000여 곳에 이르지만, 피해자를 위한 시설은 135곳에 불과한 것도 문제다. 집단따돌림 등 학교폭력 대부분이 가해자는 다수이고 피해자는 소수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차이가 극심하다. 김 국장은 "피해자를 위해 지정된 135곳도 정신과병원이나 한의원이라서 사실상 피해자 전담 치유기관이라고 보기 어렵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이용 가능한 복합형 시설이어서 피해자들이 가길 꺼리는 곳들"이라며 "특히 기숙형 피해자 전담 치유기관은 우리 단체가 운영하는 '해맑음센터'가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피해자를 위해 내리는 처분은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심리상담 및 조언, 일시보호, 치료 및 치료를 위한 요양, 학급 교체, 그 밖에 필요한 조치 등이다. 상처 회복과 치유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나 시설 안내는 없다. 김 국장은 "학교폭력 피해를 겪은 대학생 절반 이상이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고, 실제로 시도할 가능성이 피해를 겪지 않은 이들보다 2.6배 크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며 "피해자 치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도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 국장은 "학내 봉사활동이나, 사회봉사활동 처분이 내려지더라도 학교 내에서 수업권 보장을 이유로 봉사활동을 축소하거나, 시간대를 방과 후로 조정해 주곤 한다"고 말했다. 이는 가해학생이 충분한 반성과 죄의식을 느낄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고되지 않은 학교폭력이 많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김 국장은 "선생님이나 주변에 도움을 청했지만 '친구끼리 그럴 수 있어'라는 답변이 돌아오거나, 초·중·고를 거치며 친구들이 피해 신고 후 더 힘든 상황에 처하는 모습을 봐왔기에 신고해 봤자 보호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22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를 당하고 신고했다는 학생 가운데 약 30%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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